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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가 칼리 피오리나를 선택한 것은 당시의 HP에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현실에 안주하고 시장을 유지하려는 저성장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오직 했으면, 실리콘밸리에서 ‘음울한 할머니’라는 별명이 이야기 됬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칼리 피오리나는 내부에서 혁신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외부에서 힘을 끌어 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장 점유율 1위와 내부 개혁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뉴스아메리카미디어]



철의 경영자 칼리 피오리나의 승부수

그런 관점에서 컴팩과 HP의 합병은 그녀 입장에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성공적인 합병으로 이사회와 시장의 지지자 들에게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25억 달러의 비용 절감 얻어냈다. 


문제는 그녀의 이 개혁 방침이 ‘파괴와 창조적’ 개혁이었다는 점이다. 파괴를 통해서 HP의 벽들을 제거해 창조를 만들어 내겠다는 역발상에서 나온 도전이었다.


컴팩 합병후 2~3년간 구조 조정과 사업부 조정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실제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2004년 스토리지와 서버 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2억달러 손실을 기록 했는데, 이 때 철의 경영자 칼라 피오리니의 경영 스타일을 확인하게 된다. 


이 결과로 HP 회장의 총애를 받던 피터 블랙모어 부사장이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질 됬고, 마이클 카펠라스(구 컴팩의 CEO), 안토니오 페레스(프린터부문 책임자) 등 수많은 임원이 HP를 떠나야 했다. 



카르텔이 된 HP Way에 메스를 가하다

칼리 피오리나는 단순하게 인력 구조 조정만 시행 한 게 아니다. 스티브잡스가 HP에 돌아온 이후 실적이 없던 사업부를 대대적으로 정리했던 것처럼 87개 사업부 12개로 정리한 뒤 최종적으로 4개 사업부로 개편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HP Way의 가치에 따라서 사업부 중심적인 경영체제를 중앙집권적인 경영체제로 전환시켰다. 창업 이래의 보수적이고 가족적 기업 문화 속에, 무분별하게 87개나 되는 사업부로 확장 되 비대해진 조직에 메스를 가한 것이다. 


HP 자체가 아닌 사업부에 충성하는 직원들의 카르텔을 깨겠다는 의도였지만, 문제는 너무나 급진적이었다는 점이다. 사업부 간부들의 저항을 불러왔고, 이 문제 때문에 상당기간 경영에 파행을 거듭하게 됬다. 


피오리나는 이 상황 타개를 위해서 각 사업부 별로 평균 성장률 15% 실현 제의했고, 이 제의를실현하지 못한 사업부는 바로 해체가 진행되며 결국 자신의 뜻대로 경영을 시작하게 됬다. 


2002년 5월 합병 이후 ‘커스터머 솔루션 그룹(CSG)’, ‘테크놀러지 솔루션 그룹(TSG)’, ‘이미징 프린팅 그룹(IPG)’, ‘퍼스널 시스템 그룹(PSG)’ 등 4부문으로 개편 되며, 10억 달러 비용 절감을 실현했다. 


또, HP의 구조 조정 방향을 철저하게 수익성에 맞추면서, 인력 구조 조정과 함께,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가치를 병행 조사해 제품 라인업도 함께 정리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HP의 기득권을 배제되고 철저한 시장 논리가 성립되면서, HP 보다는 컴팩 제품이 더 많이 살아남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HP 인력과 사업부 정리가 더 많았고 출혈이 발생했다.



HP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HP 제품의 시장성이 그만큼 없었다는 이야기로 이후 HP의 기득권은 통용되지 않으면서 인력 구조 조정, IT 효율화를 위해 서버 20% 삭감과 데이터 센터 축소 등으로 수익성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사업 구조조정이 추가로 진행 됬다.


연구소도 개혁 대상이 됬는데, 기술력 확보와 함께 창조적 제품 개발 요구를 늘려갔다. 이를 위해 연구원과 고객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생각 아래, 주 2회씩 고객을 접대하고 만나는 저리를 제공하고, 연구소를 박물관처럼 일반 소비자가 친숙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고객과 거리를 좁히는 노력을 시도했다. 


이런 노력들로 2001년도에 1만 5,000건이었던 특허가 2003년도에는 2만 1,000건으로 증가하는효과도 얻었다. 


그리고 여성 간부도 확충 했는데, 피오리나 CEO가 여성 채용을 선호했던 것은, 차별로 인해 우수한 여성 인재가 충분히 활약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성 사원을 선발해 관리직으로서의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12개월 짜리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등 나름 긍정적인 효과도 만든게 사실이다. 


구조 조정의 결과 2003년 결산에서 순이익을 달성과 함께, 35억 달러 비용 절감이란 성과를 만들어 냈지만, 이로 인해 HP Way는 완전히 붕괴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럼 피오리나 CEO의 실수는 뭐란 말인가?란 의문이 생긴다.



개혁의 성공보다 무서운 HP의 기업 비전 부제

그 의문에 대한 첫째 대답은 HP Way 무너진 것이고, 둘째는 비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경쟁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와 새로운 분야 진출로 사업을 전환하던 것에 비해서 HP는 컴팩 합병으로 자금력의 상당 부분을 현재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쏟아 부었다. 


특히, 소니의 컴퍼니 제도와 비견 될 수 있는 사업부 체제를 깨뜨리고 여성 인력 확충과 비대한 조직을 축소한 점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HP에는 더 이상 위기 상황에 자신을 희생 할 직원이 남아있지 않았고, 모든 역량이 하드웨어에 집중되면서 사업 구조가 경기에 취약한 구조로 변해갔다. 


하드웨어 중심 사업 구조가 더 고착화 되면서 IT 산업의 경기 위축에 따라, 위기 상황이 연출되는 횟수도 증가하게 됬다. 


과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하드웨어 중심 중의로 HP를 몰아갔다는 비전 부재는 그녀의 경영을 실패한 경영으로 못박는 계기가 됬고, 그 중심의 그녀의 최대 업적인 컴팩 합병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실패한 합병은 아니었지만, 가장 우울한 합병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HP가 완전히 벤처 마인드를 잃어버리고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 기업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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