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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초 한국은 MLB에 열광하고 있었다. 박찬호란 듣도 보도 못한 선수가 갑자기 등장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서양 선수들에게 삼진을 뺏으며, 꿈에 무대라는 MLB에서 승승장구 하던 모습은 아직도 머리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다.


당시 이런 박찬호에 전 국민이 열광했던 이유가 그에게서 꿈과 특별함을 느끼고 대리만족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 후진국의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과연 통하겠는가 하는 우리들 스스로가 쳐놓은 편견들 속에서 이런 편견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에 무대에 오른 그의 모습에서 많은 국민이 열광 할 수 밖에 없었고, 박찬호란 선수를 라이징 스타로 만든 원천이 됐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1980~1990년대의 소니는 일본인에게 한국의 박찬호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Made in USA가 최고인줄 알았던 시절, 아시아의 특별한 기업의 제품에 전세계인이 열광하고 콩글리쉬인 워크맨 발음을 열창해 일반 명사로 만든 것은 박찬호에 열광했던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만큼 일본의 소니는 단순히 일본인에게 만이 아니라 아시아인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기업이었다.


중고등하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이런 소니의 위력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삼성의 마이마이나 LG의 아하라는 소형 카세트만 가지고 있어도 대단하게 쳐다보던 시절이었다.


속으론 음악을 듣고 있지만, 겉으론 영어 듣기 연습한다고 핑계 대며 이어폰끼고 다니던 모습이 생생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의 갑은 바로 소니의 워크맨 이었다. 당시에도 국내에서 워낙 비싸고 물양도 많지 않아 쉽게 손에 넣지 못해 웃돈 주고 거래하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사촌형이 들고 온 이 소니 라벨에 빠져 부모님을 한동안 사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고가였던 이 제품은 그림에 떡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 반에서 소니 워크맨을 가진 아이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단연 인기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십명의 아이들에 둘러싸여 한번만 만져 보자거나 사용해 보자는 요구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소니란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특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히라이 가즈오 사장이 결국 소니란 기업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은 이런 특별함을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지, 실적 개선이 아니란 이야기다.


특별함을 만들고 시장이 반응하게 만든다면 굳이 직원을 해고시키거나 사업장을 정리하지 않더라도 실적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이미 애플이 아이폰에서 경험했지 않는가?


우리가 이 지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이런 애플 조차도 벤치마킹 대상이 소니였다는 점이다. 소니에 의해서 애플이 성공했고 소니가 걸어온 과거를 발판 삼아 지금의 애플이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을 주창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의 롤 모델이었던 소니의 오가 회장은 “가장 단순해야 고급스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살아생전 애플의 제품 개발에서 스티브 잡스가 늘 주장하던 단순성이 바로 소니를 통해서 학습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별함에 도취 된 많은 IT 인들은 그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영향을 받았다. 이는 마치 뮤지션들이 비틀즈를 동경하고 그들에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이런 특별함이 바로 소니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히라이 가즈오의 과제는 더욱 명확해 진다. 실적 개선과 구조조정이 아닌 소니의 이 특별한 DNA를 복원하는 것이 그의 과제란 이야기다.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애플처럼 하나의 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리소스를 갉아 먹는 것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 실적만을 위해 구조조정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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