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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는 용감하다. 그리고 경험한다.

엘란 개발기 후속 내용 입니다. 한번만 더 올리면 모든 엘란 개발기는 종료할 것 같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고 나름 한국 자동차 시장의 퀄리티를 한단계 끌어올린 제품임에는 틀림 없지만.. 기아차가 망하면서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머신이네요. (머신까지는 아닌가요. ㅎㅎ;)

암튼 자동차 개발후 가장 고민했다는 가격에 대한 에피소드 입니다.



< 엘란과 판매가격 >
개발초기에 내가 이 팀에 합류하자마자 맨처음 한 일은, 이 프로젝트는 수익성이 전혀 없으니 중단하는게 좋다고 보고서 쓰는 일이었다. 아무리 원가절감을 위해 노력해도 1년에 40억은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검토가 나왔다. 최고경영진에게 검토결과를 사실대로 보고하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일부에선 노력하면 최소한 적자는 안본다고 보고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내 판단엔 어림없는 프로젝트이다. 단지, 여기서 발생된 손실은 기아의 이미지향상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면 몰라도... 하지만 회장님은 스포츠카에 대한 결심에 변함이 없었다.

또 박제혁부사장님(현재 사장)은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듯이 때론 문화생활도 정신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엘란과 같은 스포츠 카는 기아인에게 그리고 카매니아들에게 나아가서 모든 국민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현재 엘란의 정확한 원가는 집계조차 힘들 것이지만, 개략적으로 보면 재료비가 1400만원에, 인건비가 600만원, 기타경비가 400만원정도 예상 된다.

그러면 기아모텍의 제조원가가 2400만원정도 한다는 예기다. 여기에 기아의 투자상각비와 판매비를 더하면 총원가가 3000만원정도고 부가세와 특소세등을 합하면 4000만원의 소비자가격이 나온다.

원래 로터스 엘란의 영국에서 가격이 4000만원이 넘고(27000파운드), 미국에서의 가격이 3600만원(40000달러)인 점을 감안해도, 국내의 특소세를 감안할 때 기아의 엘란은 한 대당 1000만원내지 1500만원을 싸게 파는 셈이다. 물론 로터스 엘란을 그대로 수입할 경우엔 국내 소비자에겐 그만큼 더 거리가 먼 차가 되었을테고...

좋게 보면 회사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이고, 나쁘게 보면 사치스런 발상이다. 최근 기아사태로 전반적인 경영실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엘란의 자선사업같은 형태는 심판대에 올려지는 운명이다.

기아모텍과 기아자동차,기아자동차판매의 세 회사간의 거래금액자체가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밖엔 없다. 즉,기아모텍에서 비싸게 사서 소비자 에겐 싸게 파는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가격구조의 역전현상을 경영실사단 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 엘란과 전담매장 >
한국은 자동차판매에 있어선 세계적으로 독특한 시장이다. 급속도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제조메이커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양적팽창을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판매량 늘리기에 혼신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차량할부가 늘면서 이러한 직접판매방식은 자금회전률이 낮아 경영에 커다란 압박이 되고 있다. 최근 판매회사 분리와 딜러제도 도입등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하루속히 정착되어야 할 부분이다.

외국에선 거의 대부분 나라들이 딜러제가 정착되어 있다. 제조메이커는 이 딜러들을 중점관리하게 된다. 모든 고객을 관리하는 것 보다 관리의 효율성은 훨씬 향상이 되지만, 반면 고객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고객의 목소리를 다양한 채널과 보다 발전된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동일한 사양의 차라면 전국 어딜 가도 판매조건이 거의 동일하다. 간혹 영업사원이나 지점장이 별도로 특별조건으로 파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대부분 개인적인 것이거나 회사 영업본부에 별도 요청에 의거 승인을 받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외국에선 가는 곳 마다 판매조건과 애프터써비스의 질이 달라 진다. 즉, 고객과의 nego권이 각 딜러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 딜러의 규모도 천차만별이라 구멍가게식의 조그만 점포만 운영하는 경우부터 전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대규모 기업형태도 있다.

경정비를 겸하는 데도 있고, 정비시설이 없는 곳도 있고, 심지어는 중정비도 가능한 곳도 많다. 중고차매매나 렌트,보험취급도 물론 한다. 한 메이커 제품만 취급 하는 단일딜러가 있는 반면 여러회사 제품을 취급하는 복수딜러도 있다.승용차를 주로 취급하거나 상용차 또는 스포츠카만 전문으로 하는 딜러도 있다. 한국에서 전자제품이나 오토바이 판매하는 방식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엘란과 같은 정통 핸드메이드 스포츠카는 세계 어딜 가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파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일본에 수출된 비가토도 주로 스포 츠카만 전문으로 파는 딜러들이다. 일반차를 파는 딜러들은 엘란을 파는데 써 먹는 게 아니라 전시효과로 주로 이용하게 된다.

엘란을 제대로 팔려면 현재와 같은 방식은 곤란하다고 본다. 엘란은 지금 회사에서 팔고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이 사려고 찾는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팔고 나면 골치아픈차더라는 인식아래 딴 데 가서 사라고도 한다. 수백만원하는 밍크코트는 아무데서나 아무나 팔기 어려운 법이다. 가와사끼나 할리 데이비슨의 천만원 가까이 하는 오토바이는 아무데서나 취급하지 않는다. 고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엘란을 개발하면서 이런 판매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차 역설하였지만, 기존방식의 조직에서 모두가 그걸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엘란은 전담매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엘란만 전시해놓고,인테리어도 거기에 맞게 꾸미고,스포츠카 관련 잡지나 용품도 판매하고,이른바 클럽하우스 개념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고객및 예비고객에겐 멤버쉽 카드를 주고 정기적 간행물을 보내고, 유료및 무료의 드라이빙스쿨을 운영하고 전국의 엘란동호회를 대상으로 전체적 행사이벤트 를 지원하고...

전담매장은 굳이 임대료 비싼 강남등의 도심이 아니라도 좋다. 그 돈으로 일산 신도시등의 외곽에 더 넓은 장소를 갖추는 게 낫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나 예비고객 모두가 부담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이른바 원스톱 써비스와 토탈 써비스가 가능하도록 운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곳에서 엘란을 구경하고,시승해보고,계약하고,차를 인도받고, 회원가입도 하고,드라이빙스쿨 신청도 하고... 또, 이따금 들러서 차량점검도 받고,경정비도 하고,세차및 주유도 가능 하고,관심있는 스포츠카 관련 책이나 용품도 사고,평소 안면이 있는 동호회 회원들과 대화도 나누고, 각각의 동호회 운영소식도 접하고 올해의 행사나 이벤트 일정도 살펴보고,모터스포츠 소식과 그 선수들도 만나고... 이런 관심있는 모든 일들이 이 전담매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전담매장이 처음엔 전국에 하나정도 그리고,해마다 한개씩만 늘어 나면 된다. 소문만 나면 결국엔 고객및 예비고객이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엘란과 관련된 판매나 써비스에 있어서 sales manager와 service manager에게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미 차에 대해선 나름대로의 전문가들이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본사나 본부에 묻고 승인받아가며 일하는 들러리 방패막이식 운영은 절대 곤란하 다. 즉,전담매장과 전담팀에게 나름대로 주어진 범위내에서 독자적 운영권 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벤처기업처럼...

아마도 이런 원스톱,토탈 써비스는 비단 엘란과 같은 스포츠카에만 필요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 들어 현대나 기아가 오토프라자형태의 대규모 매장을 모색하는 것도 이런 써비스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이런 일반차 보다 더욱 앞선 판매및 써비스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스포츠카가 지향하는 정신인 셈이다. 스포츠카의 앞선 기술이 결국 일반차로 접목되듯이...

최근의 기아사태로 인하여 점담매장의 설치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고객들의 요구가 강하면 강할 수록 회사는 거기에 관심과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크고 작은 엘란동호회의 결성과 적극적인 활동이 아쉬운 상황이다. 엘란는 제조매이커가 80%를 만들었다면, 카매니아들이 20%를 만들어 가야 하는, 진정한 뿌리가 있는 스포츠카인 것이다. 승용차개조해서 스타일이나 성능을 흉내내는 차하고는 근본이 다르고, 개발의 기본철학이 다르다고 본다.

다음편 엘란 개발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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